A priori :: 2007/09/20 11:23
a priori는 아시는대로 "앞서서", "선행하여" 또는 "앞서는" "선행하는"이라는 뜻의 라틴어 구절로, 형용사 내지 부사로 쓰입니다.
이 말은 칸트 이래로 철학에서 아주 널리 쓰이고 또 무척 중요한 개념으로 되어 있습니다. 칸트가 이 라틴어 구절을 그의 인식론의 중요 개념으로 삼았던 거지요. 칸트가 설명하는 바를 따르면 이 말은 원래, "나는 저렇게 커다란 항공기가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그 빌딩이 무너져 내리리라는 걸 미리(a priori, in advance) 알고 있았어."라는 식으로 쓰입니다. 경험에 앞서서, 겪어 보기 전에 안다는 뜻이지요.
그는 이런 용법을 가리켜서 "상대적인 의미의 a priori"라고 부릅니다. 이 경우에 'a priori하게 알았다'는 말은 그 빌딩이 무너지는 특정한 경험에 앞서서 알았다는 뜻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특정한 경험에 대해서는 앞서서 알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건축과 항공기의 충돌이 주는 충격과, 빌딩의 강도와 등등등... 많은 것들에 대해서 "경험을 통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던 겁니다.
칸트는 "그 어떤 경험에 대해서도 앞선"이라는 의미에서 a priori, 즉,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a priori를 자기 인식론에서 지식들을 구별하는 데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삼습니다. 흄이 말하였듯이 경험은 우리에게 필연적인 지식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안 것은 모두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들이고 따라서 필연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필연적인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예컨대, 5+7=12와 같은 산수의 지식도 그런 지식의 좋은 예입니다. 누군가가 물 5리터를 술 7 리터에 더하였는데 물탄 술 12 리터를 얻지는 못하였다고 해서 그가 5+7=12가 틀리는 경우도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러한 필연적인 지식은 우리가 경험에서 얻어낸 거라기 보다는 우리의 이성이 생각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우리의 사고 방식의 근본 구조에서 비롯된 지식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지식, 경험을 통하여 얻어지지 않은 지식을 칸트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a priori한 지식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을 통하여 서양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인들을 따라서 칸트가 말한 a priori를 '선천적'이라고 번역했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 경부터 우리나라 철학계에서는 이 말을 대개 '선험적'이라고 번역합니다. '경험에 앞서는'이라는 뜻을 담아서요. 때에 따라서는 "선행적"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하이데거를 번역하는 경우에 이렇게 번역하는 걸 본 일 있습니다.
딴 소리: 1980년대에 5공 정권 하에서 철학자 이규호씨가 당시에 문교장관을 지냈는데요. 국무회의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말에 반대를 하고 나서는 아마도 유일한 장관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당시에 고려대학 철학과에 국방장관실에서 전화가 왔었더랍니다.
국방장관실: "거기가 고려대 철학과죠? 그 학교에서 철학을 가장 잘 하시는 분 좀 바꿔주세요."
철학조교실: "엥? 뭐가 궁금하신지 말씀하시면 들어보고 어느 분께 여쭙는 게 좋을 지 알려드릴테니 말씀해보세요."
국방장관실: "음... 저희 장관님께서 아프리오리가 뭐냐고 알아보라고 하셔서요. 도대체 아프리오리가 뭡니까?"
철학조교실: "헙, 그거 좀 어려운 개념인데요... 근데... 국방장관님이 왜 그런 걸?"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어졌나봅니다.(당시의 고대 철학과 조교했던 분께 들은 얘깁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국무회의에서 논쟁이 있을 때 상대가 자꾸 덤비면 이규호 장관은 "거 좀 알고 얘기하세요. 그건 아프리오리예요."라고 상대의 말을 막곤 했답니다. 그런데, 젠장 그 아프리오린가 뭔가가 뭔지를 알아야 반박을 하던 대꾸를 하던 할 거 아니냐... 이런 거였대요. 흐~... 썰렁하셨어요?
출처 : http://kdaq.empas.com/qna/view.html?n=261664



